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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고려 인종(仁宗) 23년(1145)에 간행된 『삼국사기』의 지리지 편을 보면<.....陽構縣領縣三 蹄縣本高句麗猪足縣景德王改名今麟蹄縣馳道縣本高句麗玉岐縣景德王改名今瑞禾縣三嶺縣....> 이라 기록되어 있다. 풀이하면 양구현에는 희제현, 치도현, 삼령현이란 세 개의 영현(領縣)이 있다. 희제현은 고구려때 저족현이었고, 치도현은 고구려때 옥기현이라 하였는데 경덕왕이 저족현은 인제현으로 하고 치도현은 지금의 서화현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인제군의 건치연혁이 보다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 사료는 1481년에 간행되고 1530년에 증보(增補)된 『동국여지승람』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를 <本高句麗猪足縣一云烏斯回新羅改 蹄爲楊麓郡領縣.....『屬縣』瑞和縣和一作禾一名瑞成在縣北六十里本高句麗玉岐縣新羅景德王改馳道爲楊麓郡領縣.....>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본래 고구려의 저족현 (猪足縣)이나 오사회(烏斯回)라고도 하였다. 신라때에는 희제현으로 고쳐 양록군의 영현(嶺縣)으로 하였다. 속현인 서화현은 화(和)를 (禾)로 쓰기도 하고 일명 서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저족현의 북쪽 60리에 있다. 본래는 고구려의 옥기현이었으나 신라의 경덕왕이 치도(馳道)로 고치고 양록군의 영현으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일련의 기록들로 보아 현재의 인제지방은 구고구려가 건국된 후 5세기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391~412) 때에 이르기까지는 신라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가 강원도를 점령한 1백년 후인 신라 진흥왕(眞興王) 원년 신미년(辛未年:551)에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백제는 한강 하류를 점령하고 신라는 죽령(竹嶺) 이북 10군(강원도)를 점령함으로써 인제는 신라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통일신라
  •      신라 선덕왕 6년 정유년(丁酉年:637)에 군사상의 요지로 우수주(牛首州:春川)에 군주(軍主)를 두어 다스렸는데 이때에 양록군(楊麓郡:楊)의 속현으로 하고 인제는 희제현(蹄縣)으로 개칭하고 서화는 신라 경덕왕 때 치도현(馳道縣) 기린은 종전과 같이 기지군(基知郡)으로 불렀다. 신라 문무왕 13년 계유년(癸酉年:673)에 우수주(牛首州)를 수약주(首若州:烏竹乃 또는 首次若 이라고도 부름)라 일컬었고, 경덕왕 16년 정유년(丁酉年:757) 12월 전국 9주의 군,현(郡,縣)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쳤는데 9주의 명칭은 상주(尙州)양주(良州:梁山) 강주(康州:晋州) 한주(漢州:서울) 명주(溟洲:江陵) 태주(態州:公州) 전주(全州) 무주(武州:光州) 삭주(朔州:春川)로 하였다. 주(州)는 지금의 도와 같은 대단위 구역이고, 주밑에 군 현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군에는 태수(太守), 현에는 현령(縣令) 또는 현감(縣監)이 장(長)이 되었다. 그리고 마을 단위로 촌주(村主)가 행정업무를 주관하였고 소경(小京)을 다스리는 행정책임자는 사신(仕臣) 또는 사대(仕大)라고 하였다. 현재의 강원도는 당시 삭주와 명주로 구역지어졌는데 춘천을 중심으로 한 삭주가 대체로 영서지방을 관할하였고, 강릉을 중심으로 한 명주가 영동지방을 관할하였는데 그 지역은 매우 광대하였다. 삭주의 관할구역은 북쪽으로는 현재 함경남도 덕원(德源)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加平)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주(榮州) 동쪽으로는 태백산맥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고, 명주는 북쪽으로 통천(通川), 남쪽으로 영덕(盈德) 서쪽으로 태백산맥, 동해까지로 하였다. 따라서 인제는 지리적으로 보아 영서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삭주에 속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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