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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3-04-26 18:39
내설악의 오세암
 WRITER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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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 통일후, 불교가 국교로서 숭봉왕성할 무렵 선덕여왕(善德女王) 시절에 자장이 자경을 전하고 구령의 대도를 찾고져 창건하였던 것을 조선조 仁祖때에 雲禪淨師가 중건하고 부모를 잃은 자기 조카인 다섯 살 난 옥동을 데리고 심산유곡을 찾아 들었더니 이곳이 곧 백담 계곡인 설악 산하로서 매월암이라 칭하고 어느 해 늦가을 스님은 눈이 쌓이기 전에 겨울날 양식을 마련하려고 영동 지방의 양양 도호부로 떠나게 되었다. 스님은 산중암자에 혼자 있게 될 어린 조카에게 "관세음 보살을 외우고 있거라. 그러면 3일 이내에 돌아오겠다."고 이르고 평길을 넘어 양양으로 떠났다. 
 
그런것이 그날부터 눈이 내려 산과 같이 쌓여서 평길이 통할 수 없게 되자 스님은 하는 수 없이 통탄속에 그해 겨울을 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듬해 3월이 되어서야 비로서 암자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망동대(望東臺)에 올라 매월암을 굽어보니 신기하게도 그윽한 종소리, 불측(不則)의 기적에 측은한 마음을 먹고 암자에 이르니 동자는 대사를 반겨주고 동자가 있던 방에는 영향이 그윽히 차 있고 방에서 청조(靑鳥) 한 마리가 창 밖으로 날아가고 있으매 대사는 그 연유를 조카에게 물은 즉, 자애스러운 여인의 품에 포옹되어 젖을 빨고 있었으며 그 여인의 말이 나는 너의 어머니라고 하며 동자가 다시 반문하기를 그러면 관음 보살 이시나요? 한즉 오냐 너와 명춘까지 같이 있겠노라 하였다 한다(백의부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동자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청조로 변하여 날아갔다)그리하여 梅月大師는 다섯 살 된 동자가 불법에 悟得通達한 것이라 하여 그후부터 이암자를 오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百潭寺 부속암인 이 암자는 신라가 통일 후 선덕여왕때 세운 암자로 당초의 이름은 관음암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