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3-04-26 18:36
WRITER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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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 고장의 상남 3리에 살던 어떤 사람이 아버지 상(喪)을 입었다. 그는 아버지를 명당(明堂)에 모실 생각으로 지관(地官)에게 산소 자리를 보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 지관은 산소 자리를 내가 잡아주되 내 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않된다고 먼저 다짐했다. 상주(喪主)는 그렇게 하겠다고 쉽게 약속했다.
지관은 양지바른 한 골을 묘지(墓地)로 잡아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산자리를 파 들어갈 때 넓적한 돌이 나오면 더 이상 파지말고 하관(下棺)을 하십시오. 그러면 자손(子孫)중에 귀인(貴人)이 나와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묘지를 팔 때 아무리 친한 사람이 찾아와도 아는 체 하지말고 인부(人夫)들이 바위를 뒤적이지 않도록 시키십시요."하고 일러 주었다.
장사날이 와서 그 상주는 지관이 가르쳐준 골에 묘를 팠다. 상주는 인부들이 묘지를 파고 있을 때 처음에는 지관이 말을 지키느라고 살펴보았으나 평평한 돌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관이 이야기가 차츰 믿어지지 않게 됐다. 그럴 즈음 찾아 온 이웃 주민이 있었다. 상주는 지관이 명심하라는 이야기는 잠깐 잊고서 찾아온 이웃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인부들이 파고 있는 묘지를 지켜보지 않았다.
이때 묘자리를 파던 인부들은 때를 맞추어 나타난 넙적한 돌을 파 헤쳤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학(鶴)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 올라 고개 너머로 날아갔다. 그 후 묘자리를 보아준 지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그 상주의 후손에는 지관의 말처럼 그 집안을 일으킬 만한 인재가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묘지에서 학이 나와 산 너머로 날아갔다고 하여 이곳을 "학칙령"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 칙령과 비슷한 전설로 양구군의 "실학(失鶴)고개"가 있다. 이와 같은 전설은 신라 말 도선으로부터 시작된 지리풍수설로 우리 민족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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