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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3-04-26 18:34
백운과 제후(白雲과 除厚)
 WRITER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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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이 통일된 후 한창 시국이 안정되어 태평세를 누릴 때의 일이다. 
 
신라 진평왕24년 인제에는 우애가 두터운 두 친구가 아래 윗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내는 같은 때에 모두 아기를 배었다. 그들은 어느 쪽이건 딸을 낳으면 서로 약혼을 하여 두 집의 정의를 계속 하자고 다짐했다. 날이가고 달이가자 두 부인은 해산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부인은 똑같은 시간에 아기를 낳았다.

박진사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백운이라 지었고 권진사는 딸을 낳아 제후라고 이름을 지었다. 두 이웃은 갓난 어린애를 그 자리에서 약혼해 놓고 말았다. 백운과 제후는 차츰 자라서 백운이 어느덧 국선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백운에게는 이때부터 비운이 닥쳤으니 그이 부모가 이름 모를 괴질에 걸려 앓게 된 것이다. 백약을 구해 부모의 병구환을 했으나 결국 그의 부모는 가산을 다 탕진하고 1년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백운은 주야로 상정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눈앞이 캄캄하여 통곡하기를 49일 . 바로 그날 백운은 까무라치고 말았다. 백운이 깨어보니 권진사의 집에서 간호를 받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백운이 불행히 실명하게 되자 제후의 아버지는 마음이 변했다. 딸을 재산도 없고 눈먼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제후의 아버지는 백운의 아버지가 살았을 때 맺었던 약혼을 깨고 딸을 금산 태수로 있던 이교풍에게 시집보내기로 한 것이다. 나이 15세가 되어 철이 들은 제후는 생각다 못해 어느날 밤 백운의 집을 찾아갔다. 제후는 금산으로 백운이 따라오기를 당부하고 부모가 보내는 대로 금산 태수에게로 갔다. 거기에서 그녀는 좋은날을 택하여 성혼하기로 하고 그 동안은 별거하자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백운이 금산으로 찾아왔다. 제후와 백운은 산속 깊숙이 들어가 함께 살기로 하였다. 갖은 고생을 하며 두 사람은 개녕군 송방리란 곳에 자리를 정하였다. 앞 못보는 백운은 제후와 함께 논밭을 일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백운과 제후가 밭을 가는데 오래된 석불하나가 나왔다. 백운은 석불 앞에 앉아 그 석불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제후의 생각도 한가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백운의 눈앞에는 희미하게 석불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백운은 자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 아내를 위해서도 부처님께서 눈을 뜨게 하여 주시기를 빌었다. 그는 석불을 보고 합장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신기하게도 밭에만 나가면 희미하던 눈이 광채를 받아 조금씩 앞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달이 지나자 백운은 멀쩡하게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기쁨을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들은 석불을 고이 집 근처에 모셨다. 그러자 그후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에 의해 이 석불이 신통력이 있음이 널리 알려졌으며 석불이 밤에는 서광을 비친다는 소문까지 났다.

석불이 있는 백운 제후 부부의 집에는 병을 비는 사람, 자식을 원하는 부부 등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석불에게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어 매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찾아 들었다. 이들은 공양으로 쌀을 가져오느니 베를 가져 오느니 향촉과 음식을 올리느니 하면서 법석댔다. 그리하여 백운 부부는 주인 노릇을 하면 시주가 늘어 기와집을 짓고 석불을 모실 큰 절을 지으려고 마음먹게끔 됐다. 양반집이나 대감지에서도 노소부녀가 모두 와서 기도를 올리고 심지어 는 현감과 조정 대신까지 석불 앞에서 자식을 빌고 병을 낫게 하여달라고 정성을 다하였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암행어사가 지나게 되었다.

암행어사는 이것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민가에 큰 패해가 될 것으로 알고 아졸을 보내어 집을 부수었다. 그러나 암행어사도 백운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 그래서 백운 부부는 다시 집을 짓고 석불을 모셨다. 그랬더니 해가 거듭 할수록 집안은 더욱 번창하였고 자손들도 늘어나 흥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