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3-04-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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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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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사찰은 狼川(지금의 華川)땅에 비금사(比琴寺)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한다. 당시 포수들이 짐승을 잡으러 자주 몰리는 등 불도에 어긋난 일들이 이 절 근처에서 자주 일어나 할수 없이 북면 한계리에 절을 옮기고 한계사라 칭하였다. 이 절을 옮길 때 낭천에서 한계까지 하룻저녁에 옮겼는데 옮기는 도중 청동화로 하나와 절구를 떨어뜨리고 왔다 한다.
춘천군의 절구골은 이때 절구가 떨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한계리 부근의 청동골은 청동화로가 떨어진 곳으로 전해진다. 한계리에 온 이 절은 이곳에서 다섯 차례나 화재를 만났는데 화재를 만날 때마다 주지 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사람이 나타나 절터를 옮기고 이름을 고쳐 보라고 일러주곤 했다.
화재를 자주 만난 이 절은 그 부근인 용대리 암자동에 옮겨 영취사라고 이름을 고치기도 하였으나 이곳에서도 화재를 만났다. 여기서 또 다시 화재를 보자 주지스님은 절 이름이 잘못 되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이를 고치려고 애를 썼다. 그러던 하룻밤, 주지 스님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청봉에서 절까지 담수(潭數)를 세어 보아라」고 일러 주었다. 여기서 암시를 받은 스님은 그 이튿날 청봉에서부터 절자리까지의 물굽이를 세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수는 꼭 일백개였다. 그래서 주지 스님은 절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우고 그 절의 이름을 백담사라 명명하였다. 그랬더니 그 후부터는 이 절에 화재가 전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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