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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3-04-26 18:40
내설악의 영시암의 애화
 WRITER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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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숙종 15년(1689)의 일이다.


이 해에는 나라의 큰 혼란이 빚어 졌으니 유명한 장희빈 사건이다.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 민씨께서는 왕자가 없고 숙빈 장씨가 숙종 14년 9월에 왕자를 낳았다. 숙종이 장씨에게 혹해지니 서인(西人)들이 간(諫) 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았다. 숙종 15년에 장희빈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영의정 김수흥(金壽興)과 같은 분은 "세자를 가르치는 문제가 급하지, 세자 책봉이 급하지 않다.

"고 김수항(金壽恒)과 함께 반대하니, 숙종은 장씨의 소생을 왕자로 대하고 ?숙빈 장씨를 희빈으로 대하니 서인들이 들고 일어났으나 숙종은 격노하여 김수흥과 김수항, 송시열을 귀향 보냈다가 그 해 3월에 김수흥의 관직을 박탈하고 3월에 탕사하였다. 이때 송시열도 귀향 갔다가 이해 6월에 사약(賜藥)하였다. 이때 김수항의 아들인 삼연 김창흡은 세상의 인연을 끊고 설악산의 영시암을 찾아 산수를 즐기고 영원히 세상에 나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정사를 짓고 맹세한다는 뜻에서 영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삼연은 아버지 김수항의 영을 위해 조석으로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