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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문화원  문화와역사  문화재

 
작성일 : 13-04-26 19:28
한계사지
 글쓴이 : 인제문화원
조회 : 1,274  

ㆍ소재지 : 인제군 북면 한계 3리
ㆍ건립 : 1982년 11월 3일
ㆍ지정번호 : 강원도 기념물 50호
 

인제군 북면 한계 3리 장수대 좌측 언덕(동부산장)이 바로 한계사지로서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에 명승인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후 5차에 걸쳐 로 용대리로 옮겨 현재의 백담사가 된 것이다.
백담사가 소유한 한계사에 관한 일부 기록은 다음과 같다.
<百潭寺(江原道 麟蹄郡 北面 龍垈里) 앞의 자료를 참고한다면 한계사가 창건된 연대는 현재 북면 용대리에 소재하고 있는 백담사의 전신(前身) 사찰로서 신라 진덕왕 원년(서기 647)으로 되어 있다. 그 때의 고승인 자장율사는 3년전에 봉정암과 관음암을 짓고 다시 한계사를 창건하여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신문왕 10년(서기 690) 불에 타서 다시 성덕왕 18년(서기 719)에 중건하였으며 또, 원성왕 원년 (785)에 소실되어 같은 왕 6년에 한계사 아래 30리 지점으로 절을 옮겨 운흥사로 이름을 개명했다고 한다. 그 후 운흥사도 고려 성종 3년(985)에 불이 타서 옛부터 북쪽 60리 지점으로 옮겨 심원사라 이름 붙이고 그 뒤에도 절이 소실되면 옮기고 절 이름을 선구사(서기1443), 영취사(서기1466) 등으로 바꾸다가 조선 세조 2년(서기 1457) 현재의 백담사로 옮겼다고 한다.
이 절터에 현재 남아 있는 주춧돌, 기단석, 석조물 등의 제작 수법이나 형태가 다양하고 여러 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아 절이 있었던 1200여 년 동안에 통일신라 시대 초기에 만들어졌던 원래의 모습이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석조물에 훌륭한 솜씨가 나타나고 있는 겄은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절터 남쪽의 축대 쌓은 수법은 통일신라 때의 것임을 명백히 해 준다. 이 절은 몇 차례 화재가 있었고 그 때 따라 중창을 하였으며 먼저 있었던 탑, 석조물, 주춧돌을 이용하여 건축하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