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
처음으로
:
관리자
:
즐겨찾기
인제문화원
문화와역사
문화재
:: WRITE ::
이 름
패스워드
이메일
홈페이지
옵 션
html
제 목
> > > ㆍ소재지 : 인제군 북면 용대 2리 > ㆍ건립 : 1468년 > > >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세조 14년(1468)년에 三淵 金昌옹이 창건하였으며 백담사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따라 4km오르는 지점에 있다. 누구나 설악산하면 전국에서 제일 가는 명산으로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백담계곡은 4계절 모두가 자연 경관이 빼어나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 및 등산객이 줄을 지어 다녀가는 명승지이다. > 영시암지는 평평한 넓은 터에 앞으로는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고 남쪽에는 祖元峰이 높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靑龍峰이 보이며 뒤로는 수림이 우거진 아담한 곳이다. > 숙종 15년(1689) 2월에 있었던 己巳換局으로 부친 김항이 賜死당하고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어지러운 세상과 영구히 인연을 끊기위해 더욱 효심이 지극한 한을 드리고 斜視山色을 구경하며 눈물로 이 곳에 머물러 암자를 永矢라 이름짓고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永矢庵記]에 의하면 그 후 6년이 지난 어느 날, 이 암자 뒤 골짜기에서 饌母가 범에 물려간 일이 있어 삼연은 이 곳을 떠나 壽靑山으로 가고 이곳을 虎食洞이라 불렀다 한다. > 1961년 雪淨禪師가 가시덤불 속에 묻힌 이 암자를 민망히 여겨 여러 大臣들과 道監察使 그밖에 公의 德을 사모하는 모든 선비들과 주민들에게 재물을 거두어 암자를 재건하고 불상을 안치하였는데 법당이 24間, 비각이 1間이었다고 한다. > 그 후 1925년 기호 스님이 重修했다가 6. 25동란의 재화로 소실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영시암의 기둥 높이가 덕수궁보다도 높다고 하여 朝廷에서 낮출 것을 종용하여 기둥을 잘라서 낮추었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 三淵 金昌옹의 위墟碑가 있었으나 6. 25로 인해 灰燼되었다. >
링크 # 1
링크 # 2
파일첨부